어떤 사람에게는 ‘풍요롭게 살겠다.’라는 게 그가 지닌 최고급 알사탕이 되고, 아무개는 ‘용기’의 막대 사탕을, 또 아니면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라는 별사탕을.
내 주머니에도 언제나 똑같은 맛, 똑같은 포장지, 똑같은 모양의 사탕 한 알이 있다.
‘사람을 사랑하겠다.’라는 한 알의 진실이었는데, 역으로 꼬집어 본다면 사람 또는 나조차도 좀처럼 사랑할 수 없는 성정이었기에 쥐어 왔다는 건 어린 시절부터 아는 사실이었다.
본격적인 성인이 되어서는 사탕을 잃어버리는 날이 퍽 잦았다. 그런 날들은 내게 사건이나 사고로 여겨져 활활 타는 불을 끄기 위해서는 밖에 나가 달리는 일 말고는 나를 달랠 만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달리기는 내가 일생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였고, 사람이 미워질 때마다 싫어하는 달리기를 한다는 그 모순 또한 나를 정의하는 듯했다.
똑같은 길을 똑같은 마음으로 달린다. ‘손으로 사탕 한 알을 굴리고 만지고 싶다.’.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는 나만의 진실을 발견하려고.
‘진실에게’ 는 그간 쉼 없이 반복된 달리기의 시간에서 진실에게 물은 나의 질문들과 대답을 두고 있다. 실은 숨소리밖에 안 들렸을지라도 수다스럽고 씨름 같은 시간을 보낸 뒤에야 바스락거리는 포장지 소리가 들렸다.
내 주머니만을 들여다보던 눈의 시야가 확장되면 세상을 이렇게도 들여다본다. 지금만큼 여러 방식으로 사람을 절단해 버리는 시대가 이전에도 있었을까? 차가워진 내 머리가 누군가를 잘라내고 있지 않은가?
나만큼 남을,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시대도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내게는 오래된 사탕 한 알이 몇 번쯤은 나를 구하고 사람을 구할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여름날 채소의 단맛 같은 진실을 언젠가 맛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훗날 진실이 내게 ‘넌 참 무식하고 어리석다.’라고 말하거나, 내 귀가 멀어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멈추지 않는다.’의 평범함 말고는 딱히 없었다.
‘진실에게’를 꺼낸 유일한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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