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게 된 오후는 오후일까요?
오후이면서 오후도 못 된 오후는 어떤 오후일까요.
여하간 그런 오후였습니다.
난 그가 언제나 나의 주변을 배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의 오랜 친구이며 오랜 슬픔인 그가 싫었습니다.
그는 과묵하며 소심하기에 쉬이 무시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최악의 순간마다 늘 크고 포악하게 세상을 집어삼켰습니다.
오늘은 이상한 날입니다.
늘 한두 골목 정도의 간격을 두고 저를 따라오던 그가
어쩐 일인지 옷도 갖추어 입고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사도 경계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내게 다가옵니다.
나는 기다립니다.
그의 얼굴을 마침내 가까이서 봅니다.
우울한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 알아차립니다.
그는 생각보다 달콤했던 것이었음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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